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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은 원래 라면 이름이 아닙니다
등록 2024.08.20 09:04:27 수정 2024.08.20 09:08:48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불닭볶음면은 이제 명실상부한 K-푸드의 아이콘이다. 유튜브 챌린지와 먹방 열풍을 타고 미국, 중국, 일본,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사랑받는 식품이 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품귀 현상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제조사인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수출 호조에 따라 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불닭볶음면이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원본인 '불닭'은 시중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불닭은 불닭볶음면에 앞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식이다. 붐을 이끌었던 곳은 프렌차이즈 체인 홍초불닭이다. 이 곳은 2000년대 초반 닭고기에 매운 양념을 입혀 직화로 익혀낸 불닭 메뉴를 출시했는데 입 안을 태울 듯한 매운맛과 불맛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불닭의 매운맛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치즈나 누룽지탕을 곁들이는 음식 조합도 유행했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는 거리 곳곳에서 불닭집을 찾아볼 수 있었다. 2005년 즈음엔 전국적으로 홍초불닭 지점만 160개에 달할 정도였고 다른 프랜차이즈 체인과 매장들도 우후죽순 등장했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부터 그 많던 불닭집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불닭이라는 상표를 둘러싼 두 업체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
불닭이라는 이름으로 상표권을 먼저 등록한 곳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식품기업 B사였다. B사는 2001년 4월 불닭 상표권을 등록했다. 홍초불닭의 경우 2001년 12월 상표를 출원해 2003년 11월 등록을 마쳤다.
B사는 2004년 홍초불닭의 상표권 등록을 무효로 해달라는 심판을 청구한다. 결국 이 분쟁은 대법원까지 가 2006년 12월 B사의 승리로 끝났고, 홍초불닭의 상표권 등록은 무효화됐다. B사는 2007년 6월 상표사용금지 가처분신청과 상표권침해 고소 등 법적 조치를 이어갔고, 홍초불닭은 결국 브랜드명을 '홍초 레드스테이션'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홍초불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2007년 홍초불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게 '불닭'의 상표권 권리 범위 안에 속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불닭이 널리 알려지면서 보통명사화 됐다는 논리였다. 이번에는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이 홍초불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5년여간 법적 공방을 거치는 과정에서 홍초불닭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불닭 열풍이 한 풀 꺾이던 상황에서 브랜드명까지 생소하게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 업체 뿐만 아니라 불닭을 파는 다른 식당들도 200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불닭은 한 때 유행했던 추억 속 음식이 됐다. 하지만 상표권 분쟁을 통해 '불닭' 명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몇 년 후 의외의 결과를 불러왔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2011년 서울 명동의 한 식당에서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불닭을 먹는 모습을 보고 이 음식에 기반한 볶음면을 만들게 됐다. 그게 2012년 탄생한 불닭볶음면이다.
불닭볶음면도 출시 초반에는 너무 매운맛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셀럽들이 이 라면을 먹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면서 인기 라면으로 부상했다.
인기에 불을 붙인건 유튜브였다. 2010년대 후반부터 유튜브에서 유행한 매운 음식 먹기 챌린지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된 것이다. 이제 불닭볶음면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 있는 음식이 됐고, 후속작인 까르보불닭이 나왔을 땐 땐 품절 대란 사태까지 벌어졌다.
불닭볶음면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원본'인 불닭은 시중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불닭을 라면 이름으로 알고 있늕 사람도 많다. 그런데 불닭 열풍의 진원지였던 홍초불닭이 신촌에 아직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유튜버 육식맨은 지난달 22일 서브 채널 '잡식맨'에 홍초불닭 신촌본점 방문 영상을 올렸다. 이 곳은 젊은이들이 불닭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200년대 중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직화로 구워낸 새빨간 불닭, 치즈와 함께 먹는 쌈닭, 매운 맛을 견디기 위해 함께 먹는 누룽지탕, 계란찜 등의 메뉴도 예전과 같았다. 현재 홍초불닭 매장은 신촌본점 외에도 전국에 몇 군데가 남아 있다.
육식맨은 "불닭을 찾아온 이유는 '추억팔이도 있지만 한 번 먹어보고 홈메이드로도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왔다. 그리고 불닭볶음면에 닭이 안느껴지지 않나. 닭을 제대로 넣은 리얼 불닭볶음면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주문한 불닭이 나왔을 때는 "갑자기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새내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불닭을 먹은 뒤 "17~18년 만에 먹어봤는데 사실 맛있다기보다는 반가움의 맛이었던 것 같다. 긍정적으로 중요하게 발견한 것은 불닭볶음면과는 아예 다른 음식이다. 그것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맛이 있다. 특히 불맛."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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